아이 _2016~
문득 작업은 왜 하는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이 튀어 들어와 균형이 깨지고, 힘들어지는 그런 순간이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어머니들처럼 정화수 떠놓고 비는 것처럼, 미련하게 복을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복을 기원하는 나의 행위는 극히 소극적인 것이라서 힘이 빠지는 순간이 오게 된다. “작업은 무엇인가” “작업은 왜 하는 것일까? 같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그럴 때 마다 작업의 이유를 찾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그림, 아이들의 그림처럼 검열 없이 나의 머리와 나의 손이 찾는 자연스런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자연스런 소재로 찾은 것은 지금 가장 애정을 쏟고 있는 존재 ‘아들(아이)’이다. 아이를 그리며 애정을 쏟아 시간이 좋다. 사랑하는 존재를 마음을 담아 그리는 것. 이것이 그림이 주는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을 믿고 꾸준히 헤쳐 나아가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성스럽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된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게 만드는 것처럼 자신이 믿는 것은 성스럽게 만든다.”
- 에르네스트 르랑 -
- 정희진, 어머니는 말할 수 있을까? -
My Querencia 2017
퀘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투우사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회복의 장소이기도 하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 일부)
나의 퀘렌시아는 작업실이다. 작업실이라고 썼지만, 사실은 집이다. 주방 한쪽, 책상, 거실 바닦 등이 나의 작업실이다. 나에게 몰입 할 수 있는 공간이자, 삶의 에너지 재충전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장 같은 공간이기도 하다. 집-작업실이 실재의 ‘퀘렌시아’라면, 작업실에서 하는 작업들은 내면의 ‘퀘렌시아’이다. 식탁 혹은 책상 앞에 앉아서 브레인 스토밍 같이 떠도는 생각들을 잡는다. 그리고 그린다. 말재주도 글재주도 없는 내가 수다를 떨 수 있는 무대가 그림인 것이다.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생각들은 나의 주변이야기이다. 아이가 크는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의 소환되는 경험, 인터넷 기사에서 봤던 학대 받는 아이들의 고통스런 뉴스, 로또 당첨, 전시 대박 같은 속물적인 소원 등을 그림으로 풀어 놓는다.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은 ‘자기만의 방’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방과 년3000파운드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자기만의 영역을 잃어버리고 산다. 피곤하고 바쁜 일상에 치여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더욱 더 가지고 싶어한다. 각종 인테리어 잡지에는 베란다나 주방 한켠에 카페나 작업실을 꾸린 기사들이 나온다. TV에서 맨 케이브(man cave)라는 것을 봤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남자들이 지하실 같은 공간이나 방에 자기만의 취미와 여가활동으로 가득 찬 방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남성들의 로망이라고 한다. 나 또한 주방 한쪽 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그림을 끄적이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 끄적임이 나의 작업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주방식탁에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대학졸업 무렵, 나는 하루키의 작업스타일에 대한 글을 읽고 동경했다. 작업실 구할 형편이 아니기도 했고, 거창한 작업신고식 없이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작업을 하고 싶었었던 것이다. Welcome to my querencia!
나의 퀘렌시아*(my Querencia _ 2016, 한지에 분채, 140x260cm(3폭)
작가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담긴 책가도를 의도 하였다. 책장에 있는 책과 여러 잡동사니와 통해, 과거와 현재의 생각, 미래에 대한 바램을 엿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 결혼과 육아가 최대 관심사이다. 그래서 그림에는 엄마로 사는 이야기와 사회적 관심사, 가족에 대한 기복적인 마음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책장이라는 공간은 일상을 정리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안식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퀘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투우사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회복의 장소이기도 하다.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 일부)
책장에 책들: 실제 집에 있는 책이다. 나와 나의 가족의 모습과 관심사, 미래에 대한 생각들을 책의 제목으로 나타냈다.커튼: 짜잔~하고 나의 퀘렌시아(Querencia)를 드러내는 느낌. 커튼의 무늬는 계란후라이 같이 알이 깨져있는 모양이다.
1.마트로시카, 금줄: 러시아전통인형으로 어머니 몸체에서 작은 인형들이 나오는 형태로 행운과 다산을 뜻하는 인형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서 큰 영향(금줄-출산)을 준 일에 대해 그렸다.
2.달력, 복주머니: 시간(날짜)는 가는데, 복(기회)은 언제 오나 기다리는 마음.
3.웨딩케이크: 결혼이라는 이벤트와 기대와 로망.
4.아이구두: 어린시절에 대한 데자뷰를 일으키며, 새삼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5.베이비 박스: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 엄마가 되면서 아이 관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있다.
6.일월오봉도: 좋은 세상을 기원.
7.워터볼과 나비: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동경. 여행 가는 일탈을 꿈꾼다.
8.원앙: 부부금슬 좋기를 소망
9.전시장: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멋진 전시에 대한 소망
10.성모상과 전구: 소원을 비는 마음
11.선인장: 어릴 적 집에 있던 식물의 대부분은 선인장 이였다. 지겹고 묵은 과거 같은 것이 뿌옇게 되는 필터를 거쳐 가끔씩 떠오른다.
12.파 그림과 글씨: 서명, 분신. 현재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덕목-믿음, 소망, 사랑(信望愛)
13.곰인형: 손으로 눈을 가리지만 약간의 여지를 남겨둔 채, 움츠리고, 엉거주춤 세상을 바라봄.나이로는 성인이 되었지만 세상이 두렵다. 극복하고 싶은 의지
14.돌탑과 무지개: 소원을 비는 마음에 하늘이 무지개로 응답
15.공중 관람차와 구름: 놀이공원에 대한 어린 시절의 로망과 잊혀진 추억이 아이를 키우면서 불쑥 떠오른다. 나에게 있어 공중관람차는 화목한 가정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구름 속에 가려져 있다.
16.연꽃과 촛불: 행복한 삶,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한 염원
17.열쇠와 열쇠구멍: 남자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와 열쇠구멍
18.빵과 카푸치노: 여유 있는 휴식
19.벌거벗은 인형: 아이를 키우며 잊혀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릴 적 인형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리고 가학적으로 다루었던 인형에 대한 기억이 난다. 그 인형들에 대한 미안함과 속죄
20.인형의 집: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에 대한 동경.
- 알: 어느 날 밤 자고 있는 가족들을 보니 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가능성과 미래를 축복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즉 하나의 틀을 뛰어 넘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벽을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중)
21.돈: 부(富)에 대한 부러움.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돈이 전부인 듯 느껴진다. 부자가 되고 싶고, 돈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22.앉아서 차 마시는 자유 여신상: 바쁜 일상 중 하던 일을 내려놓고 휴식
23.붓과 주방도구: 살림하며 그림 그리는 나의 지금의 모습
24.책장 하단의 수납장 문 그림: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꿈꾸는 무릉도원의 이미지.
휴식 _2016, 한지에 분채, 140x130cm(2폭)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피곤한 일상 에 쉬고 싶은 마음을 담은 그림.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달을 보면 소원을 빌고, 집 근처 북한산-가까이 있지만 빠듯한 일과에 가지 못해 신기루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빵과 차를 마시며 여유 있는 쉼을 갈구하지만 어느 한편에 쉼이 불편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은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한다.
사건사고 많은 요즘,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이렇게 집에 돌아올 수 있음에 안도하게 된다.
감모여재도 - 원영이에게 _ 2017, 한지에 분채, 100x70cm
2014년 친부와 계모의 가혹한 학대로 생을 마감한 원영이 사건의 기사의 사진 한 컷에서 시작되었다. 아이가 당했을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 아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의 무기력함에 더더욱 힘들었다. 원영이가 편히 잠들고,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 만나 행복하길 바라며 작업하였다.
자화상 _2016, 한지에 분채, 90x140cm
하트무늬털의 장막과 바니타스화(인생무상을 표현한 그림, 현재에 충실하자는 의미도 있음)를 닮은 정물은 지금을 사랑하며 충실히 살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쓰러질듯한 화병에 꽂혀있는 시들한 꽃들은 어떤 시련이 와도 오뚜기처럼 중심을 잡으려는 나의 의지를 말한다. 자식 잘 기르는 모성애 상징하는 알밤. 건강한 자손을 상징한다고 하여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주었다는 대추. 부부금슬을 상징하는 나비. 집에서 식사담당을 하게 되면서 익숙한 친구가 된 파와 과일. 이런 정물들로 현재의 ‘나’를 이야기한다.